[충신(忠信)] 아랫사람의 사정을 알지 못하면 수령이 될 수 없다 : 김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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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1.26
김굉(金硡)의 본관은 경주이고 자는 대서(大敍), 호는 독관재(獨觀齋)이다. 영조 9년(1773)에 진사가 되고 11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필선에 이르렀다. 천성이 강직하고 과감히 말하므로 사람들이 철공(鐵公)이라 불렀다.
송순명이 평안감사로 조정을 하직하고 서문(西門) 밖을 나가니, 이때 전별하는 자들이 있어 술상을 한판 요란하게 벌렸다. 김굉이 마침 그 술자리에 있으면서 같이 술을 마셨다. 술상을 거둔지 얼마 되지 않아 송순명이 말했다.
“우리 고모의 집이 근처에 있으므로 잠시 뵙고 오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조금 쉬며 잠시 기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와 곧바로 떠나려 하였다. 자리에 있던 손님들도 모두 작별하였다. 그러자 김굉은 정색하며 말했다.
“공은 떠나갈 것 없이 잠시 여기서 지체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오.”
“무슨 말씀이오?”
송순명이 그 까닭을 물었다.
“공은 주인으로서 손님들을 돌아보지 않고 사사로이 문을 나섰으니 손님과 주인의 예를 크게 어긴 것입니다. 또한 음식을 하인들에게 내어주고 곧바로 문밖으로 나가려 하니 하인들이 어느 겨를에 음식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체통과 예법을 크게 잃었으니 아랫사람의 사정에 통하지 못한 것이니 어찌 방백(方伯)의 책임을 지고 고을을 통솔하겠소. 내가 돌아가서 임금께 탄핵하겠소.”
그리고 밖으로 나가자 송순명은 농담으로 여기고 길을 떠났다. 김굉은 임금에세 상소하여 송순명을 탄핵했다.
“신이 평안감사의 사석에서 한두 가지 일을 목격했는데, 그는 체통과 예법을 크게 잃었고, 아랫사람의 사정에 통하지 못하였으므로 방백의 소임을 행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임명하시옵소서.”
임금이 김굉의 말을 듣고 그대로 따랐다. 송순명은 결국 벼슬을 물러나고 말았다. 관직에 대한 선비들의 태도는 이와 같이 공사가 분명했다.